기어이 출근을 하고 기어이 들판을 나간다.
지리멸렬한 시간들이 흐르고 있고
대부분의 힘은 괜찮은 척 하는데 쏟아 붓는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원래대로 다시 삶이 단순하고 고요하고 명료해지는 중이다.
2차 치료가 마무리 되는 동안 군데군데 시퍼런 멍자국과 편두통과 근육통이 일상이 되었다.
다음의 일상은 무엇과 함께 하게 될까.
다시금 못된 생각이 불쑥 끼어들었다.
통증과 함께 꼼짝없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동안 한 사람이 살아오며 가졌던 깊은 속내를 건네 듣는다.
아무도 원하지 않았지만 밑바닥까지 드러내보이고야 만 자신의 얕은 밑천에 한없이 수치스러웠음을 느꼈음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내 앞에서 이제야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고 얘기를 한다. 지나온 삶을 후회하며 거짓과 변명으로 일관되었던 잘못에 괴로워했다. 그리고 열심히 묵묵히 자신의 다짐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끝없이 미안함을 말하는 사람.
한없이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
그 간극을 채우는 건 무엇이어야 할까.
돌아보아서 좋은 일들이 아니라면 굳이 맺을 인연들은 아니다. 의지와 상관없이 떠오를지도 모를 아름답지 않은 일들을 안고 굳이 그리할 필요가 없다. 후에 후에 지금의 진심이 정말로 내 마음을 움직인다면 그때나 다시 생각해 볼 일.
어차피 끊어질 인연이었다 보이니 어떤 식으로든 그들은 끝맺음이 되고 있었을 것이고 그 내막이 어쨌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그리고 내게 시작될 연은 내 의지로 돌아서면 그만이다.
누구와도 연을 맺지않는 내 안으로 의도하였든 아니든 불쑥 들어온 두사람에게 최소한의 이기심으로 여전히 침묵을 택한다.약속대로 전할 것은 전했고 이로써 내가 져야 할 책임을 마무리지음이 맞고 나머지는 그들이 알아서 할일이다. 서로의 구실과 착각으로밖에 점쳐지지 않는 그들의 행보가 너무 가볍고 실망스러워 말을 뱉는 것 조차 아깝고 잠시나마 부러워했던 감정이 부끄러워졌다. 떳떳하지도 책임지지도 못할 한날의 유희에 묻혔던 그들에게 진심이란 것은 무엇이었을까. 모든 사실을 다 알고도 내게 이럴 수 있을까. 절대 아닐 것이 뻔하기에 그저 조용히 내려놓는다. 본인들의 눈 먼 앞일에 빠져 타인의 진심을 너무 가볍게 여긴 결과이다. 영영 이 기가 막힌 진실을 모른채 가는 것이 그 댓가일 것이다. 그렇게 남들과 다르다 특별하다 말하는 본인들이 정작 우매함을 들킨지도 모르고 말이다. 더더군다나 마음이 영 안좋은것은 자신들의 허울좋은 명분을 위해 곁의 누군가마저 동참하게 해서는 안되었다는 사실이나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자신들이 그토록 소중하다 말하는 연이 너무나 그럴싸해서 진심이라고 믿었다 친다. 그래도 그 소중함을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눈가리고 아옹하는 짓은 참 비열하다.
마음이 변하는데는 이유가 없다. 좋아지는 일도 그렇듯이 그냥 어느날 그렇게 되는 것이다.동시에 그런 마음이라면 좋겠지만 타이밍은 늘 어긋나는게 세상살이 아니던가.
적어도 한사람은 통감하고 있으니 묵묵히 바로잡는 모습을 지켜볼 일이다.
남편과 이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서로 웃음을 터트렸다. 사람들의 삶이 그런거지, 그리 가벼우니 제 눈앞만 보고 살아지지.
그저 내 몸 하나 건사하는 일에 몰두하는 날들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다.
툭. 빗방울이 어깨 위로 떨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