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log
0118
물빛...물.들.다.
2023. 1. 23. 23:21
'거울 속 새하얗게 반짝이는 것은 눈(雪)이었다. 그 눈 속에 여자의 새빨간 뺨이 떠올라 있다. 뭐라 형용하기 힘든 청결한 아름다움이었다.'
-[설국]중에서 / 가와바타 야스나리
강원도의 눈, 그것도 대설주의보가 연일 보도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곳 사람들이 일구는 삶의 터전임을 생각하면 그리 반가운 소식은 아니겠으나 도심에 머무는 나로서는 그저 새하얀 눈 위의 구두 발자국과 한편의 소설, 눈이 먹어버린 소리를 먼저 떠올리며 낭만을 꿈꾼다. 그 곳에 가면 걸리적 거리던 것들쯤은 아주 가벼이 떨쳐버리거나 시끄러운 마음의 소리들도 다 눈이 먹어버릴 거란 막연한 생각을 했다. 그러면 소설 속의 그 여자처럼 나도 눈(目)이 아닌 눈(雪)을 갖게 되는 마법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얼토당토한 심산을 품으면서 말이다. 며칠 방전되어 널브러져 있던 몸뚱이와 주인을 닮았는가 때마침 퍼져버린 차를 핑계삼아 며칠간의 협박과 회유와 변덕 끝에 친구와 기어이 길을 나섰다.
하얗게 모든 걸 덮어 흔적을 지운 눈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흔적을 남긴다. 오늘 지운 흔적 위에 덧입힌건 작은 새들이 먹이 구하며 떨구는 나무 위의 잔설, 짧게 울며 날던 오색딱다구리의 소리, 짧뚱한 동고비의 잰 몸짓과 나무 끝에 매달린 물방울을 통과하는 햇빛. 친구와 내가 쌓은 한뼘쯤의 좋은 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