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공지영]
내가 스므살 중반 무렵, 회사 워크샵 간 김에 마치고 여행을 하기로 맘 먹었었다. 마침 연이 있던 천리안 문학동아리가 근처 오대산에서 모이니 합류하기로 했던 터였다. 이미 그때는 공지영 작가는 책을 두권인가 냈던 참이었고 종종 단체 채팅방에서 함께 수다를 떨기도 했었다.
오대산 인근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 밤바다로 달렸다.
여름이었어도 서늘하게 느껴졌던 바람과, 말갛게 보이는 별들을 두고 동아리 친구들은 오랫동안 모래밭에 앉아 있었다. 그 가운데 유일하게 담배를 물었던 그녀는 순간순간 긴 한숨과 함께 무릎사이로 고개를 파묻곤 했다. 모두에게 말이 넘치지도 않은, 그렇다고 너무 적막하지도 않은 차분한 분위기였고, 그날 밤의 추억은 여덟명이 옹기종기 모여앉은 사진 한장으로만 남았다.
그녀의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면서도, 수많은 구설과 악플과 사건에는 한번씩 이해가 되지 않아도 그녀의 책을 산다. 그날 밤 그녀의 힘없던 시선이, 떨구던 고개의 무게가 젋은 날의 내게 묵직하게 느껴졌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자조적인 한 마디 같은 책 제목처럼, 에필로그에서 말했듯이 그녀 자신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행복해기르를 를 바란다.
*발췌
P24
인생이 좋은가 나쁜가의 문제는 결정의 시점을 어디서 잘 바라볼까의 문제일 뿐이다.
p30
삶은 긴 순례 같은 것이겠다. 출발선은 어쩌면 같지만
우리는 수많은 갈림길에서 헤어지고 다시 만난다. 가는 사람을 축복해주고 오는 사람을 반기면 되겠지.
p177
누가 뭐래도 습관적인 관계를 이어가지 마라. 더구나 그 관계가 당신을 조금씩 파괴해가고 있다면. 더 나아가 성장하지 못하는 관계에는 가끔 겨울잠을 자게 해라. 그리고 가끔 친구들에게 자신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몰래 찍어달라고 부탁하라. 그리고 당신이 판단해라. 당신이 의식하지 못할 때 당신의 모습 그것이 당신의 진실한 모습이다.
p266
가끔 우리는 문제를 진심으로 해결하고 싶어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p287
사랑이란 홀로 있기를 가장 행복해하는 사람이 자신의 일부를 다른 이를 위해 내어주는 것이다.함께 성장하기 위하여.
p288
어떤 신부님께서 질문하셨다.
“사랑의 반대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워하는 것도 아니고 무관심한 것도 아니고 ‘이용한다’입니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졌고 행해지고 행해질 수많은 악들이 떠올랐다.
“외로워서, 욕정을 풀기 위해, 돈이 없으니까. 먹고살기 어려워서, 남이 얕보니까, 집안일을 위해, 허전하니까,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네가 필요해.”
혹시 우리가 이래왔던 것은 아닐까
p321
사랑하는 내 친구들 부디 행복하길, 부디 오늘 무슨 수를 써서라도 행복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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