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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잇는 글

죽은 자의 집 청소(김완)_201107

by 물빛...물.들.다. 2020. 11. 7.

[죽은 자의 집 청소/김완]

P17
바닥을 닦다가 앉은 채로 잠시 천장의 가스관을 올려다 본다. 문득 내가 그녀의 시점으로 이 공간을 내려보는 듯하다. 저기에 매달렸다면 그녀가 생에서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잠시 뒤에 내가 분해하려는 바로 저 텐트의 정수리였을 것이다. (중략) 모든 살림을 한 눈에 내려다보며 삶을 끝내려는 그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p101
이 집을 치우며 지독한 고독을 보았다면 그것은 결국, 내 관념속의 해묵은 고독을 다시금 바라본 것이다.

p109
그 누구라도 자기만의 절실함 속에서 이 세계를 맞닥뜨린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p134
어질러진 것을 치우고 비운다. 그 점에서도 내가 하는 일도 식탁치우기와 다를 바가 없다.식탁 위에 차렸던 것을 주방으로 옮기듯 그저 집에 있는 것을 끌어 모아 집 바깥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매일 지구상의 모든 가정과 식당에서 일어나는 식탁치우기는 내 일과 본질적으로 같다.

p139
당신이 하는 일처럼 내 일도 특별합니다. 세상에 단 한사람 뿐인 귀중한 사람이 죽어서 그 자리를 치우는 일이거든요. 한 사람이 두 번 죽지는 않기 때문에, 오직 한 사람뿐인 그 분에 대한 내 서비스도 단 한번 뿐입니다. 정말 특별하고 고귀한 일 아닌가요?

p165
그 곳이 어디든,우리가 누구든, 그저 자주 만나면 좋겠다. 만나서 난치병 앓는 외로운 시절을 함께 견뎌내면 좋겠다. 햇빛이 닿으면 쌓인 눈이 녹아내리듯 서로 손이 닿으면 외로움은 반드시 사라진다고 믿고 싶다. 그 만남의 자리는 눈부시도록 환하고 따뜻해서 그 어떤 귀신도, 흉가도 더 이상 발을 들이지 못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