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서걱거리는 갈대밭을 뒤로 하고
짝찾아 애타게 우는 개개비 소리에
하염없이 귀기울이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나는 왜 이 시를 다시 떠올렸을까,
근 일년만에 하필이면 슬픈 시를.
...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나희덕
우리집에 놀러 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와.
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 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짐짓 큰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
조등(弔燈)하나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 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나는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그가 너무 일찍 피워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
#Monolog #일상 #생활탐조 #WildBirdClub #너도그래서우느냐 #매일이별하며살고있구나 #하필이면 #개개비 great reed warbler


